안녕하세요? 릴라입니다.
갑작스럽지만 여러분은 AMV를 즐겨 보십니까? 저는 딱히 찾아보지는 않고 자주 보지도 않지만 정말 가끔 알고리즘에 보이면 한 번씩 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AMV로 칭할 만한 영상들이 맞는지도 아니면 매드 무비라고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긴 합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의외의 곡과 콘셉트로 굉장히 잘 만들어진 AMV를 접하게 되었기에 소개합니다.
.
.
.
.
.
.
.
.
AKR.
2025년 5월 17일 모르는 사람 님이 게시한 AMV입니다. 2024년 말 발매되어 전세계뿐만 아니라 2025년의 음매드 씬까지 강타한 곡인 〈APT.〉를 원곡으로, 애니메이션 〈유루유리〉시리즈를 소재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올해의 〈APT.〉 음매드 중 가장 좋아하는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어떤 걸 꼽으시겠습니까? 일본의 '음MAD 작자가 뽑는 음MAD' 10선 투표에서 〈BCK.〉가 종합 투표수 4위에 올랐고, 〈KNPT.〉가 생방송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조회수 천만 회를 넘긴 〈APT X Lava Chicken〉과 현시점 조회수 천만 회를 바라보고 있는 〈아파트 게임〉 등도 있었죠.
이 많은 〈APT.〉 음매드 중에서 가장 제 마음에 들었던 〈AKR.〉는 무엇이 달랐을까요?
〈APT.〉의 도입부를 들으면서 뭔가 익숙하다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다면, 아마 Toni Basil의 〈Hey Mickey〉 를 떠올리셨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APT.〉는 〈Hey Mickey〉를 샘플링(정확히는 Interpolation)했기 때문에 후렴을 직접 비교해서 들어봐도 편곡이 꽤 비슷합니다. 1981년 곡인데, 저는 약 2010년 전후까지 여기저기에서 이 곡을 꽤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라던가.
〈APT.〉에 대한 평론을 살펴보아도 (그냥 나무위키에서 적당히 봤습니다), 곡이 세련되었다기보다는 강남스타일과 같이 '익살스러운 요소'가 지배하고 있다던지, 빈티지적인 리프 및 애티튜드가 로제와 어울린다던지 하는 느낌의 서술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에도 이 곡은 〈Hey Mickey〉를 뭔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거나 했다기보다는 그 빈티지 감성을 계승하려고 한 곡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저는 이 곡에서 2010년 초반 무렵에 가까운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복고로서 여겨졌을) 플레이풀함을 느낍니다. 이 곡에 대한 저의 인식이 불호에서 호로 바뀌게 된 계기는 아래의 테크노 Edit을 듣게 된 것이었는데, 이 에딧이 곡의 빈티지성을 부각시킨 측면이 있기 때문에 원곡에 대한 제 초점도 그러한 방향으로 이동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27초부터 나오는 이 익살스럽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신스가 너무 유쾌하지 않나요.
아무튼 위와 같은 인식의 변화를 거쳐, 어느 시점부터 저는 〈APT.〉를 단순히 유치한데 중독성 있는 유행곡으로서가 아니라 그 빈티지스러움을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는 곡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AKR.〉는 제가 생각하는 그런 〈APT.〉 특유의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해내고 또 재해석해낸 작품이었기 때문에 가장 제 마음에 들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락부 4인방 → 학생회 → 오무로가 라는 왕도적인 구성이나, 그 시절 일상물이 그랬던 것처럼 특별한 스토리텔링 없이 후반에 감동적인 연출을 넣은 것도 그렇고, 개사나 다른 기믹 없이 원곡 보컬을 그대로 조교해낸 것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현대 음매드적인 어떤 시도를 하려고 하지 않은 점이 오히려 〈APT.〉라는 곡과 더 좋은 시너지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이번에 모르는 사람 님의 보컬 조교 실력에 또 한번 놀라게 되기도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 님은 언제나 음매드스러움을 유지하는 선에서의 가장 듣기 좋은 수준의 조교를 보여주시는데, 심지어 이토록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안정적인 퀄리티를 내실 수 있구나 라는 걸 이번 작품을 보고 느꼈습니다.
이런 테마의 음매드에서는 너무 사람 같이 디테일한 보컬 조교가 들어가면 오히려 작품에 섞이지 못하고 테마를 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반대로 작품 내내 AI보컬을 고수하는 BCK.에는 저는 전혀 정이 붙질 않습니다. 사실 그 외에도 여러모로 완성도가...), 이 작품은 충분히 음매드스러우면서도 영어 발음이 거슬릴 정도로 어색하지도 않은, 딱 그 중간 지점을 완벽하게 노린 보컬 조교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AMV 구간을 절대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겠죠. 자칫 음원이 애매해질 수 있는 이 구간에서 마이크를 과감하게 원곡에 넘겨버리고 완전히 다른 연출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Hey Mickey〉의 샘플링이 주는 응원가라는 인상을 놓치지 않고 극대화시킨 치어풀한 테마, 그 시대 특유의 유치한 듯 단도직입적인 컷편집과 FX, 그 와중에도 절대 허투루 짜맞춰지지 않은 클립 선정과 그 흐름. 단순히 특이한 연출로서가 아니라 AMV로서의 정성과 완성도가 엄청납니다. 프로페셔널하다기보다도, 그 시절에 티비플 월간 랭킹의 매드 무비를 보면서 느꼈던 종류의 감동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고 할까요.
〈자그마한 히나〉를 통해 〈자그마한 나〉라는 곡을 접하고 좋아하게 된 사람이 속출했듯이, 이 장면은 〈AKR.〉을 통해 〈APT.〉라는 곡에서 호감을 느낄 수 있게 된 사람이 속출할 포텐셜을 가진, 원작에 대한 사랑과 원곡에 대한 이해 어느 한 쪽만 없어도 불가능했을, 그러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곡에 진정으로 걸맞는 〈APT.〉의 리스펙트 음매드의 흐름이 생긴다면 저는 당연히 이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품이 많이 들어서 유행하기는 어려우려나...
위와 같은 이유로 이 작품을 올해의 AMV 1선으로 꼽게 되었습니다.
본 기사는 2025 올해의 1선 by 릴라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 2025 올해의 샘플링 뮤직 1선
- 2025 올해의 뮤직 비디오 1선
- 2025 올해의 AMV 1선 << 지금 여기
- 2025 올해의 ASMR 1선
- 2025 올해의 콜라보 1선
- 2025 올해의 팬영상 1선
- 2025 올해의 교양 비디오 1선
- 2025 올해의 음악 1선
- 2025 올해의 문장 1선
- 2025 올해의 소리MAD 1선
마지막 기사인 2025 올해의 소리MAD 1선 말미에서 시리즈 전체를 갈무리합니다. 본 기사는 지금 읽고 계신 여러분께서 시리즈 전체를, 아니면 최소한 2025 올해의 소리MAD 1선을 필히 읽어주시리라는 것을 전제로 쓰였음을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