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12월 21일 열린 이벤트 소리믹스에 DJ로서 무대에 섰던 릴라입니다.
제 타임의 재현 믹스(단품)를 '[소리믹스] otoMAD-DJmix.madness.241221'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했습니다:
(owatax 님의 DJ Mix 영상의 제목을 멋대로 따라했습니다)
현장에서는 각종 억까와 제 실수로 인한 오디오 문제가 (특히 초반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이미 보셨던 분들도 위 단품에 다시 한번 들러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얘는 왜 한국 이벤트에서 처음 보는 일본 음매드만 주구장창 틀다가 내려감?'에 대한 변명 겸 하여, 이번 세트리스트 구성에 어떤 생각으로 임했는지, 그리고 제가 미숙하여 본 무대에서 100% 전달할 수 없었던 이번 세트의 콘셉트와 메시지 등등을 이 글을 통해 갈무리해보고자 합니다.
세트리스트
그 전에, 여기서 (feature-rich한) 세트리스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방향성
일찍부터 하던 하나의 고민은, 소리믹스가 그저 '다같이 모여 소리MAD를 보는 행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떠오르는 여러가지 방향성 중에서 저는, '소리MAD를 통해 클럽 디제잉의 느낌과 매력을 전해보자'라는 일차적인 방향성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애니송 클럽, 리듬게임 음악 파티, 동인음악 파티, 특정 장르 지향의 각종 레이브 파티 등등 여러 종류의 디제잉 파티에 다니면서 체감한 것 중 하나는, 관객 입장에서 디제잉 파티는 내가 아는 곡을 들으러 가는 곳이기도 하고 동시에 모르는 곡을 들으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청자들이 '모르는 곡'이라는 디메리트를 서사로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청자들이 '모르더라도 즐길 수 있는 곡'을 트는 게 본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아무튼 모르는 곡이 아는 곡에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적어도 어떤) DJ에게 주어지는 과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행사에 오시는 관객분들 중에는 디제잉 파티(혹은 유사 행사)에 완전히 처음 오시는 분들이 많으리라고 생각해서, 이분들이 '아는 작품이 많이 나와서 좋았다' 뿐만 아니라 '모르는 작품들도 많이 나왔는데 좋았다'라는 인상을 조금이라도 받아가신다면 제 방향성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기쁜 결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세트리스트 작성에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점점 방향성을 구체화시킨 끝에, 최종적으로는 소리MAD에 익숙한 관객분들에게는 디제잉 파티의 매력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디제잉 파티에 익숙한 관객분들에게는 소리MAD의 매력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세트를 목표로 삼게 되었습니다.
콘셉트
방향성이 구체적으로 잡히기 전에는, 클럽 음악이 쓰였거나 그에 밀접한 작품들, 혹은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작품들의 매시업이나 에딧, 니코동 네타 샘플링 중심의 너드코어 등등이 어느 정도 들어가는, 지금보다 nerdtronics에 비교적 가까울지도 모르는 구성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느낌으로 작품 선정에 전전긍긍하던 와중에, たこーちき(이하 타코치키) 님이 音MAD House Mix를 게시하신 걸 보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던 '클럽 음악' 콘셉트 및 무드와 비슷하면서도 완성도는 제가 가능한 것보다 훨씬 높고, 심지어 제가 잔뜩 틀고 싶었던 타코치키 님의 하우스 매드들이 대부분 들어 있는, 여러모로 훌륭한 믹스를 봐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위 믹스를 의식하여 저는 일부러 이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었습니다. 오디오에 에딧 혹은 드럼 보강 등의 수정을 가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나름의 규칙도 세우고(사실은 병역 문제 등으로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초기에는 매우 적었던 한국 작품의 비중을 세트를 다듬으며 점점 늘리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구간별로 테마를 정함으로써 스토리텔링을 만들자고 하는 콘셉트를 정했습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는 아래 세 개의 테마가 정해졌습니다.
Mood
제 사전에서 귀여운 여자아이의 소리MAD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ありすのもじぴったん(fine c'est la mix)를 가장 먼저 정했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하이템포의 '세상 밝은' 작품들로 초반을 구상하려고 했는데, 막상 뒤져보니 제가 떠올리는 만큼 밝은 작품들을 많이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하우스 템포를 향하여 어두워지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Monochrome
제가 좋아하고 또 틀고 싶었던 작품들을 늘어놓다 보니, 유독 흑백 구성의 영상들이 적잖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문득 흑백 매드로만 이루어진 구간을 만들면 보기에도 좋고 훌륭한 테마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흑백 및 단색조의 매드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니코동에서 작품을 디깅할 때에도, 흑백으로 된 썸네일 위주로 감상하면 되니 보다 효과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찾은 작품들 중에 메인 테마를 결정짓는 계기가 된 작품들이 있는데, 바로 反社会セリフ合わせ(반사회 대사나열)과 RUSH ユニ(RUSH 유니)입니다.
Madness
-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테크노 클럽에 들어서는 사람이 느낄 만한 어떠한 경지?
- 그런 걸 소리MAD로 전달해보고 싶네요 (후략)
광기.
소리MAD가 가지는 가장 독창적인 매력이 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지금의 저는 그렇게 답할 것입니다.
다차원적 2차 창작이라는 정체성, 뻔뻔함에서 나오는 고유의 음악성과 뒤얽힘에서 나오는 고유의 영상미, 이 모든 것을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해내는 데에서 나오는 숭고미. 모두 훌륭한 특징이지만 소리MAD의 광기만큼이나 독창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언어화하기도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부분, 광기는 그렇기 때문에 광기라고 불리는 것이겠지요.
'반사회대사나열'은 메시지적으로, 'RUSH 유니'는 음악적으로 소리MAD적인 광기를 너무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감상을 받았기 때문에 두 작품이 이 '흑백 존'의 마지막 차례가 되었습니다. (사실 완전한 흑백이 아니라는 점도 순서에 기여했습니다만)
기획 초기에는 소리MAD를 통해 '레이브 파티의 광기'를 전해보자는 생각이었지만, 방향성을 바꾼 이후부터는 '소리MAD만의 광기'를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디깅했습니다. 그 결과 두 작품 뒤로 이어지는 작품들도 어느 방면으로든 소리MAD적인 광기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고르게 되었는데, 특히 뒷 순서일수록 영상으로 보여지는 광기 또한 크게 신경써서 골랐습니다(눈 아픈 영상들로 골랐다는 뜻). 음원과 완전히 유착되는 영상이야말로 소리MAD가 그 광기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독창적인 매체 아니겠습니까.
「きっと君も狂ってんだ」
「분명 너도 미쳐 있는 거야」
사실 맨 처음 작품이었던 みるみる(미루미루)야말로, 원곡의 주제와 노랫말에 대한 무자비한 해석을 통해 광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소리MAD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작품 또한 굉장히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작품을 마지막에도 트는 수미상관 구조를 생각했었다가, 다른 작품을 생각했었다가, 브레인스토밍 중 서노 님의 추천으로 지금의 あまうりベア バグ はだか むりょう(아마우리베어 버그 하다카 무료 (하다카가 뭔데))가 마지막 곡이 되었습니다. 흐름에 딱 맞는 BPM과 메가믹스적인 구성에 미루미루와 닮은 라스사비까지 더해진, 지금의 구성에서 고를 수 있었던 최적의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맺으며
3구간이라는 초전개적 구성 때문에 40분이라는 러닝타임 제한이 생각보다 부족하여 아쉽게 못 튼 작품들이 굉장히 많아 아쉬웠습니다. 특히 なっつん 님 작품은 초안에는 두 개나 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빠지게 되어 많이 아쉽습니다. (감사하게도 TangenT님이 대신 하나 틀어주셨습니다. 만세~~) 소리MAD의 디제잉이라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었기 때문에, 다음에도 비슷한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글러먹은) 신년 소원을 끝으로 이 중구난방이었던 글을 이만 줄이겠습니다. 조만간 10선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사족
- from 24100
제가 キタ/けっそくベア를 무조건 틀겠다고, 마지막 작품에 섞어서 틀겠다고 계속 얘기하고 다니는 바람에 oz Han 님께서 키타 인형을 그려넣어주신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생각보다 그 구간에 손이 너무 바빠서 못 틀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