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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2024년 10선 5일

Title

언젠가부터, '겨우 알아듣는다'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YouTube에서 VTuber의 영어 자막 키리누키를 보게 되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절반 조금 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한국어 자막 영상들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알고리즘에 이끌려 유사한 영상들을, 그리고는 곧 유사하지도 않은, 그저 영어나 일본어로 된 영상들을 보고 또 보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부터 하루 종일 한국어보다 외국어를 더 많이 보고 듣는 날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점차 깨닫게 된 것들은:

첫째는 해외의 영상들이 한국어 영상들보다 대체로 내용이 유익하고 재미있다는 것, 둘째는 같은 내용이더라도 내가 능숙하지 못한 언어로 된 콘텐츠가 더 흥미롭다는 것, 셋째는 충분히 잘 담은 메시지는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전해진다는 것.

그리고 넷째는, 사실 그 전해지는 무언가는 기본적으로 본래의 내용이랑 전혀 연관이 없으며, 그럼에도 그 '오해'가 결국은 본래 이상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근원이라는 것.


Room708

  • 음매드의 비언어적 예술성을 역설적이게도 언어를 빌려 가장 우아하게 보여주는 작품. 음매드의 비언어적 예술성이 언어적 요소로부터 비롯되는 경우는 음악의 그것보다 훨씬 잦지만, 특히 이 작품이 표현하는 감성이야말로, 극도로 절제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음매드라는 포맷이기에 가능한 범주에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단 하나의 문장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그 세계관에 완전히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문제작.

동기불능.


저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잘 웃어주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일행들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주제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할 때면, 저는 한 발 뒤로 물러나서는 그 단편적인 대화를 유심히 들으면서 끄덕이고 웃고 반응하곤 했습니다.

실없는 농담에 웃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관련 없는 화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고 저에게 조언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사실 그 모든 행동은 온전히 제 유희를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르는 용어를 들으면서 그 의미를 오해하고, 대화의 전후 맥락을 오해하고, 그들 서로의 말하기 상성을 오해하고... 글이라면 모를까, 실시간으로 대화가 진행되는 중에 이걸 동시에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리도 없고 거기에 의미도 없는데. 그러나 바로 그 헛된 무리함 — 정보 과부하 — 이 저에게는 퍽 즐거운 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LSD의 환각에 대한 동경인가?


RUSH 유니

  • 과한 대사나열을 과한 곡이 받쳐줌으로써, 음매드로서는 드물게 과한 표현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한 작품. 음매드의 정보 과부하라는 특성을 오로지 한 캐릭터의 대사만으로 아낌없이, 그러면서도 설득력 있게 풀어내었다. 원곡의 고조감을 그대로 증폭시키는 구성을 밀어붙이고 또 성공시킨 것은 이 곡과 소재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었다.

우리들이 살아간다는 것에는, 결국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물음이야말로 삶의 본질이 아닐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자문자답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반주곡.


확실히 그것은 중독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진정한 앎과 온전한 배움에 쓸 수 있는 에너지를 허구의 탐닉에 낭비해버리고 마는, 그렇지만 그것이 아주 버려지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켜버리고야 마는, 그런 질 나쁜 중독. 질문을 위한 질문을, 상정을 위한 상정을, 시간이라는 금을 써서 끝없이 탐닉하는, 그것은 허구의 인생을 사는 길인가?

생각해보면 애초에 정보량과 도파민의 상관관계는 본능의 레벨에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이었던 것입니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모든 정보는 곧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인 생명의 위협이고, 위협을 감지하고 느끼는 데에 가장 깊게 관여하는 호르몬이 바로 도파민이라고 하니까요. 정보 과부하는 곧 복합적인 위협들에 둘러쌓인 일촉즉발의 상황 — 그렇게 해석하면 도파민과 정보량의 정비례 관계는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을 비롯한 언어적 개념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완전히 통용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제 경험에 따르면 사람마다 어느 종류의 소리까지를 '정보'로 받아들이느냐에 개인차가 있었고 그것이 '복잡한' 음악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를 만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2023년부터 니코동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한 Hyperpop 및 Hyperflip이라는 장르의 음악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Hyperpop은 과격하고 오거닉한 신스와 과-가공된 보컬, 과장된 디스토션, 짧은 길이 등을 특징으로 하는, 주로 2000년대 인터넷에 대한 향수를 주제로 하는 신흥 장르입니다. Hyperpop의 요소를 차용한 '사람 마니아'의 사운드를 (사전적인 의미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고 놀랐던 일이 생각나네요.

그 하위장르인 Hyperflip은 거기서 더 나아가, 과도한 음압과 과격한 고주파 사운드의 활용으로 그 절대적인 엔트로피를 늘릴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유명한 '치트키' 음악들을 잔뜩 샘플링하여 청자의 기억에 관여하는 복합적인 정보량 또한 늘리는 한편, 레이브 사운드를 통해 무아지경을 만들어 그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 쓰여야 할 사고를 저해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보량을 늘린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분석입니다만).


wants mom to know she looks cool and doesn't plan on changing의 소리MAD

  • '히카킨 존'이 하이퍼플립의 유치한 면을 메가믹스라는 형태로 수입했고, 'to 바보라고 하는 쪽이 or not to 바보야!!!!!!!!!!!'가 비교적 하이퍼플립의 노스텔지아를 이용한 고양감을 표현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이 작품은 하이퍼플립 특유의 정보량에서 오는 격양을 음매드적으로 재해석하는 데에 성공했다. 2024년 유행한 하이퍼팝 스타일의 그것을 극도로 감각적으로 비틀어낸 시청각적 표현, 그리고 숨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소재들이 자아내는 정보 과부하. 하이퍼플립과 음매드의 관계에 대한 고찰의 해였던 2024년에 이 작품은 그 이상(ideal)을 엿보여주었다.

If you think you know the answer, don't tell me—


그런데, 여기서 청자가 유용한 정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요소들은 전부 노이즈가 됩니다. 유사 장르를 통해 자극적인 사운드 디자인에 청자가 익숙해지지 않은 경우, 샘플링된 '치트키' 음악을 청자가 모르는 경우, 차용된 레이브 리듬에 청자가 익숙하지 않은 경우 등. Hyperflip의 정보량을 온전히 받아내기 위해 필요한 사전 경험과 지식이 굉장히 많으며, 이 장르가 근본적으로 (사전적인 의미에서) 서브컬쳐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비언어적 정보의 한계인 것이죠.

여기에서 음매드가 가지는 폭력성이 드러나는데 — 첫째는 음매드의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가 고의로 단편화된 맥락의 대사라는 점이고, 둘째는 그 외의 모든 악기들 하나하나 또한 저마다 중구난방의 단편화된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 각각을 최대한 많이 표현해내는 것 자체가 음매드의 장르적 정체성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음매드는 시청자의 뇌리에 적극적으로 언어적 정보를 꽂아넣는 장르입니다.


㋥도류집합체

  • 캐스터의 역할은 시청자의 뇌리에 정보를 꽂아넣음으로써 상황 파악을 돕는 동시에 감정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소재, 반전, 연출, 미장센, 그루브 — 모든 요소가 머리와 가슴에 스트라이크를 하나씩 꽂아넣는 작품.

That is a rocket!


전통적인 음악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악기'는 누적된 역사적 맥락 외에는 독자적인 맥락을 가지지 않습니다. 가지지 않아야만, 작곡가의 메시지를 왜곡 없이 표현해낼 수 있으며, 정말로 중요한 맥락을 가질 보컬 등에 자리를 양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컬 등 음악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 또한, 그 맥락은 해당하는 곡 하나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보통은 아티스트의 삶이나 시대상, 혹은 다른 예술 작품에 대한 레퍼런스 등을 반영하게 됩니다. 적어도 맥락의 '잘림'이 의미를 갖는 음악은 분명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 팔이 소녀

  • 낯설고 충격적인 소재로부터 시작하여 '오타쿠', '미스터리', '천재', '아이돌' 등 공통의 키워드를 매개로 고리밀기하여 규격 외 스펙트럼의 소재를 넘나들며 쌓아올리는 서사. 2분 내내 이리 튀고 저리 튀면서도 한 순간도 흐뜨러지지 않는 몰입감과 애트모스피어. 맥락 짜깁기를 통해 독자적인 맥락을 만들어내는 음매드의 특징을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여실히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

"가족이란 건,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저기, 그런 건 언제 누가 정해놓은 거야?"


음매드는 다릅니다 — 음매드가 하는 짓은 기본적으로 '맥락의 짜깁기'입니다. 12편짜리 애니메이션의 수 초 짜리 클립, 유명인이 방송에서 툭 뱉은 대사 한 마디, 세계적으로 유행했거나 반대로 아무도 모르는 인터넷 밈 등. 음매드 작자는 이 단편화된 맥락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도 하고, 짜깁기하여 독자적인 맥락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때 시청자가 아는 소재는 콘텍스트에 대한 기억을, 시청자가 모르는 소재는 콘텍스트에 대한 갈구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거기에 양보는 없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미화를 통해, 갈구는 속단을 통해 오해로 변모합니다.


반사회 대사나열

  • 어떻게 보면 러브코미디 합작의 안티테제일까? 맥락의 단편화를 통한 주제의식의 극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이 작품의 대사 하나하나에 공감이 된다고 하면 위험한 상태일지도 모르겠지만, 이토록 감성적이고 밀도 있는 구성에 어떻게 이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쥬 군이 하는 말은 하나도 모르겠어! 모르겠어, 난 모르겠다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고! 자기 말로 얘기해줘!


남의 대화를 들으며 맥락의 오해를 즐기는 이상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위에서 했습니다만, 생각해볼수록 음매드 감상과 이 악취미가 굉장히 닮아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작품을 보면서 만드는 서로 다른 오해들은 단단히 얽혀있을 수밖에 없고, 이것은 작품의 주제의식에 대한 강한 공명을 만듭니다. 음매드가 이토록 폭력적일 수 있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유발할 수 있는 '오해'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오해의 연속은 정보의 과부하를 낳고 이해를 포기하게 만드므로.

음매드에 얼마나 익숙한지와 관계 없이, 여자아이가 화면에서 같은 자세로 노래 비슷한 무언가를 부르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면, 무의식은 본능적으로 "왜?"를, 맥락을 갈구하다가 곧 이해하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생각을 그만두는' 결과는 곧 정보의 과부하와 같은 맥락에서 도파민을 부릅니다. 이것은 슈르라는 개념의 근본적인 특성이기도 한데, 슈르에 개인차가 크게 작용하는 이유도, 음매드 씬에서 슈르함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힘내~! 성

  • 대사 하나 없이 이렇게까지 깔끔하면서 단순명쾌한 동시에 슈르한 작품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보는 걸 멈출 수 없다.

우으으...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은 결코 자기 자신을 애써 이해시키려고 들지 않는 작품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제가 그 작품들을 완전히 이해하는데에 어려움이 있는,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이상의 오해를 가질 수밖에 없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외국어로 된 작품들에 더 마음이 끌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 역시 비언어적인 요소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겠지요.

시청자가 오해할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 말로 하지 말자.


Talk!

  • '플로어감'을 음매드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만점짜리 답안이자 동시에 그것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는 것이 본인뿐이라는 증명으로서의 작품. 우산이 바람에 날려 꺾이는 장면의 활용 하나만으로 이 제작자의 천재적인 감각이 해명된다. 원곡이 중추가 되는 음매드가 음매드로서 표현할 수 있는 매력과 재해석 가능성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

Can we skip the messages

I wanna do MOREEE THAN TALK

TAKE THIS TO ANOTHER LEVEL


그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 다른 인생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니까.


다다를 이유는

  • 창작물과 음매드의 경계, 창작물과 현실의 경계, 음매드와 현실의 경계를 동시에 무너뜨리는 위험한 작품. 현대인의 일상과 비일상에, 현실과 가상의 사회에 한없이 가까이 닿아있는 소재로서의 도중하차 시리즈, 이거, 극에 달하면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였구나. 그렇게 경계가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는 기억들이 뒤얽히는 2분 24초간의 '황혼의 시간'을 나는 목도했다.

외침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삼켜져 끝자락에 닿아

이 목소리가 들려?


— 그러면 제가 좋아하는 2024년의 작품을 하나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대정령 - 팬서비스

  • 불특정 다수의 팬을 과감하게 작품에 자발적으로 소재로 편입시키고, 그 주동자이자 또 한 명의 팬으로서 작품 내에서 직접 합창하는 '본인소재'. 제작자와 소재의, 더 나아가 창작자와 창작물의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새로 쓴, 음매드를 떠나서 진짜로 위험한 하나의 예술 작품.
  • 기술적인 측면에서 '성대모사 동원 인력'은 완전히 사도이며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이 기법이 오히려 작품의 주제 의식을 완성하는 역할을 했다. 팬들의 도움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들의 우상으로서 다시 설 수 있게 된 아이돌. 나를 깎아내어 우상을 더 빛내고자 하는 팬심. 그 헌신은 내막에 가려지고 무대 위에서는 완전해진 우상만이 보이는 구조. 이 모든 개념이 기법과 완전히 맞물려, '창작'이 그 스스로의 목적어가 된 채 현실과 동기화되고, 대정령의 공연은 현실에서 성사된 것이 되었다. 나는 그날, 대정령의 무대를 보았다.

끝.


Ending

안녕하세요, 릴라입니다.

이번에는 부끄러운 글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에세이를 세 번 쓰면 작가가 탈탈 털린다는데, 직접 이렇게 에세이 비슷한 무언가를 끄적여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니코동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기 때문에 불가피했던, 모바일에서 읽으시느라 시청에 불편을 겪으신 분이 계신다면 죄송합니다. 더불어 지각에 대해서도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올해는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작품들을 자세히 파고들어 분석하는 기사는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직접 해석해보는 경험은 제가 그 작품들을 더 좋아하게 되는 데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역으로 그러한 해석을 요하는 요소들이 과연 제가 그 작품을 '10선으로 꼽을 정도로' 좋아하게 된 이유였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의 기사는 제가 이 작품들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에 대한 에세이 비슷한 무언가가 주 흐름이 되었습니다.

고의적으로, 소개하는 작품들의 대표적이지도 않은 단편적인 대사들을 따 와서 글에 다소 해체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음매드의 무례한 해체주의를 닮은 글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 라고 뒤늦게 이유도 한번 갖다 붙여봅니다. 그것 또한 음매드를 닮은 일이니까.

제가 문장을 굳이 이해하기 어렵게 써버리고 마는 성향이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본문의 글감이 '겨우 알아듣는'인 덕분에 이런 문장이 나름 또 메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서 일부러 고치려는 노력은 않았습니다. 콜론, 대시, 번역체 등 한국어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의 과도한 사용도 마찬가지.

문체와 소재는 훈련소에서 읽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영향을 다소 받다가 말았고, 두 개의 분리된 흐름의 글이 번갈아 나타나다가 점점 서로 가까워지는 구성은 훈련소 입소 전날 읽은 SCP-6001의 영향을 받다가 말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SCP-6001은 2024년 올해의 책 1선을 꼽으라고 하면 (책이 아님에도) 지체없이 고를, SCP를 떠나서 그 자체로 굉장히 잘 쓰인 명작 SF 단편소설이므로, 다들 시간 나실 때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읽으시면 문장 퀄리티가 대비되니까 꼭 나중에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작년에 인문학 책을 총 1.3권 정도 읽었으며 모두 훈련소에서였습니다.

이번 기사는 콘셉트 상 선정 작품들의 분위기가 다소 한정되었는데, 아쉬운대로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을 5개 담은 뒷면 마이리스트도 만들어봤습니다. 막상 만들고 보니 이쪽은 또 소재 폭이 심각하게 좁네요.

그럼 다음 차례인 여유만만님의 기사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끝으로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제가 여기↑에 하이퍼링크를 달려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낼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응원 감사합니다